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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여행/해외여행및 산행

베트남 다낭

     2019년 04월 03일 수요일

      *맑음

      *아다모호텔~JK2노니침향쇼핑~다낭대성당~SYAY HOTEL 점심식사~까오다이교사원

         ~MANGO WORLD 건과일쇼핑~영흥사~BROWN COFFEE매장 커피쇼핑~LE,GARDE식당저녁식사

           ~한강유람선~다낭국제공항

      *친구들과 부부동반

영흥사 해수관음상

다낭 여행의 백미를 장식할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다,

오늘은 티 타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쉬움에 숙소에서 미케비치를 내려다보고 지난 이틀간의 추억을 회상해보며 마지막 여행을~~~

이렇게 시간은 후딱 속절없이 흐르고~~~

  ▲잠자리를 떨치고 일어나 티타임을 갖고

  ▲아침식사를 하기위해 숙소를 나선다,

  ▲아침식사후 짐을 챙겨 로비로 내려왔다,






  ▲마지막 일정으로 노니 침향 쇼핑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침향나무


  ▲쇼핑을 끝내고 차로 이동하여 다낭대성당으로 가는길에 은행앞을 지나며

  ▲다낭대성당(핑크성당) 현지인들에게는 성당지붕 수닭 풍향계 때문에 수닭성당이라고도 불린단다,




다낭 대성당

1923년 프랑스 식민 통치 시기 건축된 성당으로 수닭 풍향계가 돌아가는 독특한 지붕으로 인해

현지인들은 수닭 성당이라는 의미인 찐 또아 꽁 가(Chinh Toa Con Ga)라고 부른다.

분홍색 외벽이 인상적이며 일요일 미사 시간에는 신도들이 몰려 장관을 이룬다.

내부는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되어 있다.












  ▲성모 마리아상




  ▲다낭대성당을 나와 버스로 이동하여 STAY HOTEL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식당에 도착하니 고명은 얻은 베트남 쌀국수 그릇이 수북히 쌓여있다, 육수만 부어면 바로 시식가능


  ▲점심만찬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건너와 뒤돌아본 STAY HOTEL  

  ▲Stay Hotel 앞 길건너 학교구경





  ▲호텔로비의 호국






  ▲점심식사후 까이다이교 사원을 찾았다,


까오다이교사원

1926년 베트남 남부의 터이닌에서 응오 반 쩨우(Ngo V?n Chieu)에 의해 창시된 혼합적 유일신교로서

호아하오교와 함께 베트남의 양대 신흥종교인 까이다이교 사원,왼쪽 푸른눈으로 세상의 모든것을 볼수 있다고 함

석가, 예수, 마호메트, 공자, 노자등 다섯성인을 믿어며 모든 종교는 하나로 통합된다고 한다,

여자는 왼쪽으로 출입, 남자는 오른쪽으로 출입하여 기도를 올리고 중앙에는 서있으면 안된다고 함

까오(높다), 다이(크다) 높고 큰 신앙심 때문인지 1억 베트남 인구중 신도수가 300만명이 넘는다고 한다,


1,석가모니(불교)~기원전 563년경 음력 4월8일 인도북부 히말라야 산맥쪽 카필라왕국에서 태어남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부처님으로 불러왔다,
              석가모니는 이 세상에 오기까지 많은 세월 동안 부처가 되기 위한 수행과 공덕을 쌓다가 슈도다나(정반)왕

              과 마야부인을 부모로 하여 태어났다. 그는 전통적인 바라문교육을 받았지만 세상일에 무상()함을

              느끼고 29세에 출가하여 6년간의 고행 끝에 마침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도()를 깨닫고 부처가 되었다.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는 녹야원이라는 동산에서 다섯명의 비구 수행자에게 최초의 가르침을 주었다.

              그 내용은 어느 곳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 세상 고통의 원인인 집착, 이를 벗어난 평화,

              그리고 그에 이르는 방법에 관한 것 등이었다. 중부 인도 각지를 45년의 세월에 걸쳐 설법,

              교화를 계속한 석가모니는 마침내 80세에 이르러 쿠시나가라의 숲에서 열반하였다.

              석가모니를 모시는 전각을 대웅전, 대웅보전이라 한다.
              여러 부처들은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 되지만 손모양을 다르게 표현하여 부처들을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손의 모양을 수인()이라고 하며, 모양에 따라 각기 구분한다. 석가모니불의 경우에는

              선정인·항마촉지인·전법륜인·시무외인·여원인의 5가지 수인을 주로 취한다

 2,예수(그리스도교)~예수는 하느님의 아들로 아담의 원죄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인류를 구제하기위해 인간의 육체인

            성모 마리아의 몸을 빌려 태어났다,

            기독교의 시조. B.C. 4경 로마 제국의 식민지 팔레스타인 지방의 갈릴리에서 태어난 유태인으로 목수였다.

            유태인은 예로부터 야훼(Jahweh) 신을 믿어 야훼가 구세주(Messiah)를 보내, 신의 선민인 유태민족을   

            구원해 줄 것이라는 메시아 사상을 갖고 있었다.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던 유태인은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여, 그들의 절망은 깊어져, 이 세상의 종말과 '신의 나라'를 실현시킬 메시아를 강렬히

            요구하고 있었다. 유태의 지배계급이었던 사두개파와 종교 지도자 계급인 바래새파는 한편으로는 로마의

            지배에 협력하고 혹은 유태교의 율법의 고정화, 형식화에 전념하여, 민중의 고뇌에 응할 수가 없었다.

 3,마호메트(이슬람교)~(570~632) 원음으로 무하마드(Muhammad). 이슬람교를 일으킨 아랍의 예언자.

           이슬람교도에게는 최후이고 최대의 예언자이다. 메카에서 출생, 메디나에서 사망. 신에게서 받은 계시로

           610년경부터 유일신 알라에의 귀의()를 설법했으나 박해를 받아 622년 메디나에 성천(, Hijra)한다.

           후에,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고, 이슬람 국가의 터전을 구축했다. 마호메트에게 내려진 신의 계시는

           성전 『코란』에 기록돼 있다.
           이슬람교 교리는 사도 마호메트을 잘못 묘사함으로써 모독 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신의 조형 표현을

           제한하거나 또는 금하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라시드 알 딘 하마다니가 그린 『집사()』

           (자미 알 타와리크 Jami al Tawarilkh)의 사본삽화 (1310/11경, 런던의 왕립아시아학회와 에든버러

           대학도서관)에 나타나 있고, 『미라주 나메』 (Miraj Nameh) 에도 화염모양의 광배에 둘러싸인 모습이

          그려지고 있다. 또한 흰 천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모습도 있는데, 여기서 화가들이 그 표현에 신중한 태도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 엿보인다. 『미라주 나메』는 예언자 마호메트의 천국과 지옥에의 신비한 밤의 여행을

          표현한 것으로서, 천사에 둘러싸인 대천사 가브리엘에 선도되어, 부라크(Buraq, 여성의 머리와 노새의

          동체와 공작의 꼬리를 갖는 전설상의 신령한 동물)를 탄 마호메트의 승천 장면은 장식적 효과와 극적 표현에

          넘쳐 있다. 『미라주 나메』의 대표적 작품으로서는 1436년 헤라트에서 제작된 사본삽화(파리 국립도서관)를

          들 수 있다.

 4,공자(유교)~기원전 551년 오늘날 중국의 산둥성 취푸() 동남쪽에서 하급 귀족 무사인 아버지 숙량흘()과

           어머니 안()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구()이고 자()는 중니()이다.

           공자를 일컫는 영어 콘휴셔스(Confucius)는 존칭인 공부자()의 라틴어식 표기이다.

           공자의 어머니는 아버지와 정상적인 혼인 관계로 맺어진 사이가 아니었다. 공자는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17살 때 어머니를 여의였으며, 19살 때 송나라 출신 여인과 혼인했다. 20살 때부터 계()씨 가문 창고지기로

           일했고 가축 사육일도 맡았지만 주나라 관제와 예법을 꾸준히 공부하면서 예 전문가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35살 노나라 에서 내란이 일어나 소공이 제나라로 망명하자 공자도 제나라로 떠났다가 2년 뒤 귀국했다.

          공자가 48살 때 계손씨의 가신 양호가 정권을 잡자 공자는 정치에서 물러나 본격적으로 제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3년 뒤 양호가 망명하면서 공자는 중도()를 다스리는 책임을 맡았고 다시 사공() 벼슬과

          대사구() 벼슬을 지냈다.

          기원전 500년 노나라 정공과 제나라 경공이 회담할 때 공자가 의례를 맡아 노나라가 빼앗긴 땅을

          돌려받음으로서 공자의 명성이 드높아졌다. 이 시기가 공자의 정치 생활에서 최전성기였다.

          그러나 공자는 계씨를 비롯한 삼환 씨 세력을 타도하려다가 실패하고 한 무리의 제자들과 함께 고국을

          떠났다  (기원전 497년) 이후 공자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가 14년만인 기원전 484년 노나라로 돌아왔다.

          이 때 공자의 나이 68살이었다.

          이후 공자는 노나라의 악()을 정비하고 제자를 가르치며 문헌을 정리하는 데 전념했다.

          그러나 가장 아끼는 제자 안연이 세상을 떠나자 깊은 실의에 빠졌다. 온몸으로 흐느껴 우는 공자를 제자들이

          말리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을 위해서는 울고 싶은 만큼 울게 내버려두어라.’ 애제자를 떠나보낸

          슬픔 가운데에서도 공자는 기원전 481년 [춘추()]를 완성했다. 72살 때는 역시 아끼던 제자 자로

          위나라에서 일어난 정변에 휘말려 피살되었다. 이번에도 공자는 제자를 위해 곡했다.

          그리고 기원전 479년 73살 때 공자는 세상을 떠나 노나라 도성 북쪽 사수() 언덕에 묻혔다.

 5,노자(도교)~중국 고대의 사상가이며 도가()의 시조이다. 성은 이(), 이름은 이(), 자는 담().
         『노자도덕경』이라고도 불리우는 『노자』는 제자백가
()가 상당히 발전한 무렵부터

           한()대까지의 도가 사상의 소산()이다. 『노자』의 중심 사상은 인의() 등 도덕이나 지혜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인민을 지배하려고 하는 유가(주로 맹자)에 대하여, 도덕ㆍ지혜를 버리고 지배의욕을 버리고

           무위자연()에 의하여 지배하려고 하는 정치사상과, 동일하게 무위무욕()으로 남에게

           겸양하는 것에 의하여 성공ㆍ보신()하려고 하는 처세술이다.
           이들에 대한 근거로서, 현상의 배후에 불가지()의 실재()인 도()를 설정하여, 우주생성설과

           음양의 자연학을 도입하여, 세계는 도()로부터 나오고 도에 의하여 생성ㆍ사멸의 운동을 한다고 하는

           객관적 관념론을 전개하였다













  ▲까이다이사원을 한바퀴 둘러보고


  ▲길거리 가로수 옹이에 향을 꽃아 피운다


  ▲까이다이교사원 담장 옆 길거리 매장에서 바나나옷 쇼핑

  ▲옷 매장 주인과 함께

  ▲현지인 장미 가이드와 함께


  ▲보미커피집에서  


  ▲시원한 망고쥬스 한잔을 마시고 버스로 이동

  ▲망고 월드를 찾아 건과일 쇼핑


  ▲쇼핑을 하기전에 망고쥬스와 건과일 시식회를 갖는다, 보미집 망고쥬스보다 여기 망고쥬스가 훨씬 맛있다, 








  ▲건과일 쇼핑을 끝내고 영흥사로~~~

  ▲영흥사 2018년에 건축한팔각팔층탑 앞에서








  ▲영흥사의 와불 앞에서



  ▲영흥사엔 분재가 참으로 많고 아름답다,



  ▲영흥사의 와불




  ▲영흥사에서 32km에 걸쳐 백사장으로 형성된 이스트해변을 바라본다,







  ▲팔각팔층탑의 포대화상 배를 시계방향으로 돌려가며 만지면 많은 부를 쌓을수 있다고 한다,

  ▲포대화상















  ▲영흥사의 68m 해수관음상, 베트남에서 제일 큰 해수관음상으로 동남아 최대라고 함  



  ▲인자한 모습으로 중생들을 내려다보고 계신 해수관음상











  ▲해수관음상 아래 법당입구가 사방으로 뚫려있다,


  ▲나무뿌리가 예술작품 같다,







  ▲기묘하게 생긴 분재가 참으로 아름답다, 이곳 영흥사에 전시된 분재만 100여개 이상이라고 가이드 왈~~~



  ▲영흥사 주변의 야생 원숭이들

  ▲사람들과 친화력이 있어 도망가지 않고 주변을 맴돌다가 사람들의 소지품을 낚아채 간다고 주의를 하란다,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고~~~


  ▲영흥사 관광을 끝내고 BROWN COFFEE매장을 찾아 커피 시음을 하고 쇼핑을

  ▲족제비 똥으로 만든 위즐커피 쇼핑



  ▲커피쇼핑을 끝내고 LE, GARDEN식당을 찾아 저녁식사를~~~




  ▲저녁식사를 끝내고 다낭여행의 피로를 풀기위해 맛사지를 원하는 사람만 오아시스 맛사지 샵으로 다시왔다, 전신맛사지 2시간에 40$, 나머지 일행은 자유시간

  ▲맛사지후 마지막 일정으로 한강 유람선을 타기위해 달려왔다,









  ▲21:00부터 40분간 유람하게될 유람선에 오른다,


한강

한강은 베트남 남중부(다낭)에 위치한 강이다,

베트남 꽝남성에서 발원하여 다낭에서 남중국해로 빠져나간다,

한강은 길이 약 7km로 강폭은 약 900~1200m 평균 수심은 약 4~5m에 이른다,

  ▲유람선에 올라 맥주 한캔으로 모든 피로를 풀고 야경투어



  ▲다낭 한강의 야경


  ▲잠시 뒤 2층 공연장에서 애띤 소녀 무희의 공연이 시작된다,





  ▲공연 무희와 포트타임 (공연팁으로 1$을 주고)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화려한 한강 야경속으로 빠져든다,






  ▲한강 용다리




  ▲한강 크루즈호





  ▲띵똥땡!! 한강유람선 투어를 끝으로 다낭여행의 종지부를 찍고 다낭국제공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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