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02월 19일 일요일
*맑음
*임시주차장~도요암~우베틀산~베틀산~베틀재~좌베틀산~큰상어굴~작은상어굴~동화사~도요암
~임시주차장 5.67km 3시간36분소요
*옆지기와 둘이서
좌베틀굴 370m
봄의 길 목 언저리에서 고향을 다녀오다가 잠시 짬을 내어 찾은 베틀산,
낮은 고도에 비해 시원한 조망과 산이 품은 아기자기한 볼거리들로 인해 시간 가는줄 모르고 산을 쏘다녔다,
긴 가믐으로 먼지가 많은게 험이지만 산세는 여느 산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이야기 거리가 풍부하다,
우리도 덩달아 추억하나 만들고~~~
임시주차장-도요암-우베틀산-베틀산-좌베틀산-큰상어굴-작은상어굴-동화사-도요암-임시주차장
▲임시주차장에 애마를 두고 들머리를 찾아 촌 길을 거슬러 올라 간다,
▲베틀산 산마루금이 그려지고
▲도요암에서 우측계단으로 오르면 된다,
▲잠시 도요암을 둘러보고
▲대웅전은 일반 가정집 같아 그냥 페스
▲베틀산에 든다,
▲뒤돌아본 도요암
▲우베틀산 갈림길 이정표에서 우베틀산으로
▲우베틀산의 철계단을 오른다,
▲가믐으로 부처손이 배배꼬였네
▲우베틀산에서 내려다본 해평면 일대
▲우베틀산을 내려서며 베틀산과 좌베틀산을 바라본다,
▲철계단을 앞서 내려간 옆지기
▲베틀산 갈림길로 되돌아왔다,
▲베틀산 오름 철계단
▲베틀산을 오르며 뒤돌아본 우베틀산
▲베틀산 바위전망대에 올라선다,
▲바위전망대에서 조망하는 해평면 금산리
▲베틀산정상에서
▲베틀재 이정표
▲좌베틀산을 향해가며 뒤돌아본 베틀산과 우베틀산
▲오늘의 최고봉 좌베틀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조망터에서 오늘의 출발지와 도요암을 내려다보고
▲상어굴을 품고있는 좌베틀산
▲협로를 올라서는 옆지기
▲베틀산 최고봉에 서다,
▲좌베틀산 돌탑과 삼각점
▲협로를 따라 내려간다,
▲동화사 갈림길에서 상어굴 방향으로
▲철계단을 내려선다,
▲시원하게 조망되는 조망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긴 철계단을 내려서서 좌측으로 상어굴로
▲큰 상어굴
▲큰 상어 입속으로 입성
▲작은 상어굴
▲작은 상어굴 체험
▲놀았으니 먹자~
▲동화사 절을 새로 지을 모양이다,
▲절을 새로 짖기까지 사용될 조립식 대웅전 인 것 같다,
▲대웅전 뒤편 마애여래입상
▲곧 잎이 터져 나올것 같다,
▲마애여래입상 앞 조망터에서 잠시 몸 풀기를 하고
▲금산리를 조망한다,
▲만들어진 년도를 알 수 없다는 마애여래입상
▲법 복 사이사이 틈새에 동전이 놓여있다,
▲우리도 장난기가 발동하여 동참
▲동화사 검둥이가 인기척에 살며시 고개를 내어민다,
▲용왕당을 둘러보고 동화사를 떠나온다,
▲쓸만한 집인데 폐허가 되었다,
▲하산완료했다고 두 팔벌려 환호하는 옆지기
▲도요암에 다 다라 좌측으로 바라보는 베틀산
▲억새가 병풍이 되어 베틀산을 살짝 가려준다,
▲애마가 기다리는 임시 주차장
▲도리사 입구 옛날 그집에서 묵밥이랑 손두부를 먹고 도리사를 찾아든다,
▲모든 님들 새해 소망 꼭 이루시길~~
▲태조선원 대청마루에서 잠시 쉬어간다,
▲아도화상을 만나로 가는길
아도화상
아도화상(阿道和尙)은 5세 때 어머니의 권유에 따라 출가하여 16세에 위나라로 가서 아굴마를 만나고,
현창화상(玄彰和尙)의 강석(講席)에서 공부한 뒤 19세에 귀국하였다.
263년(미추왕 2) 신라로 가서 왕성의 서리(西里)에 머물렀다. 아도화상이 대궐에 들어가서 불교를 행하기를
청하였으나,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라 하여 꺼려하였고, 심지어는 죽이려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에 일선현(一善縣) 모례(毛禮)의 집에 숨어 살았다.
264년 성국공주(成國公主)가 병이 들어 무당과 의원이 치료를 하였으나 효험이 없자 사방으로 사람을 보내 의사를
구하였다. 아도화상이 대궐로 들어가 병을 치료한 끝에 낫자 왕이 대단히 기뻐하며 소원을 물었다.
아도화상이 천경림에 절을 세워 불교를 크게 일으켜 방가(邦家)[나라]의 복을 비는 것이 소원이라고 하자,
왕이 허락하였다. 띠로 집을 덮고 흥륜사(興輪寺)를 창건한 뒤 불법을 강연하였으며,
모례의 누이인 사씨(史氏)도 이때 여승이 되어 삼천기에 절을 짓고 영흥사(永興寺)라 하였다.
얼마 뒤 미추왕이 세상을 떠난 뒤 사람들이 아도화상을 해하려고 하자,
모례의 집으로 돌아와 스스로 무덤을 만든 다음 문을 닫고 들어가서 자절(自絶)하여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다른 기록과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아도화상이 신라 소지왕 때
3명의 시자를 데리고 일선현 모례의 집에 와서 있다가 몇 년 뒤 병 없이 입적하였고,
시자들이 경률(經律)을 강독하여 가끔 믿는 이가 있었다고 하였다.
아도화상에 대해서는 여러 책에 다르게 기록되어 있는데, 『해동고승전』에는 서축 사람이라고도 하고,
오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도 하였다. 또한 아도화상을 『삼국사기』 눌지왕조에 등장하는
묵호자와 동일 인물로 보는 설도 있다. 김천시의 직지사는 418년(눌지왕 2)
아도화상이 선산의 도리사(桃李寺)를 개창할 때 함께 지은 절이라고 한다.
절의 이름에 대해서는 아도화상이 도리사를 창건한 후 멀리 황악산 직지사 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저곳에 절을 지으라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빛내림이 시작된 낙동강가를 서대에서 내려다본다,
▲아도화상이 직지사터를 가리킨 서대
▲커피한잔이 간절하여 찾은 도리카페
▲후원에 갖다온다는 카페 주인장이 오래토록 나타나지 않아 커피는 다음으로~
▲반야쉼터엔 커피가 없다, ㅎㅎㅎ
▲바위를 품은 나무를 바라보고 도리사를 떠나 보금자리로 길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