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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사진/부부 산행

왕산 필봉산 (산청)

     2013년 05월 01일 수요일 (근로자의 날)

      *맑음

      *구형왕릉주차장~김유신사대비~구형왕릉~수정궁터~류의태약수터~망경대~망바위~가짜왕산

           ~왕산~여우재~필봉산~깨진바위~광구계곡~전통한방유원지~특리교 10.5km

      *옆지기와 둘이서

      *노래 : 나의 사람아 / 김민식  

 

왕산 923.2m

근로자의 날을 맞아 한의학과 약초의 고장 산청 왕산을 찾았다,

금서면 화계리의 덕양전, 김유신사대비, 가락국기비문, 구형왕릉, 류의태약수터 등등 산행이라기 보다는 문화유산 역사기행

이라고나 할까, 옛 선조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재미가 솔솔하다,

잘 가꾸어진 송림 사이사이엔 철쭉이 꽃망울을 머금고 하나씩 하나씩 순번을 정해 터트리고 있다,

전망바위에서 내려다 보는 산청일때와 경호강 전통한방관광지 등등 조망이 압권이다,

전통한방관광지는 6월부터 시작되는 산청 약초엑스포준비로 공사가 한창이다,

박물관도 내부공사로 무료입장은 하였는데 공사현장 작업자들이 공사 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구경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내 나왔다, 도로도 새롭게 확장공사를 하느라 곳곳이 패여 엉망이다,

하루빨리 모든공사를 마무리 짖고 산청군민의 숙원사업인 약초엑스포가 성왕리에 잘 치르지기를 기원한다,

 

구형왕릉주차장-구형왕릉-수정궁터-류의태약수터-망바위-가짜왕산-왕산-여우재-필봉산-광구계곡-구름다리-전통한방관광지-특리교

 

 덕양전

 

 왕산숙 : 종친들의 종사교육관

 

 

 

 

 

 덕양전

 

 덕양전 비석

 

덕양전 홍살문과 외삼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

이 전각은 가락국의 마지막 왕 구형왕과 그 왕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받드는 곳이다,

구형왕은 532년에 신라 법흥왕에게 나라를 선양한 후 이 곳 왕산 수정궁으로 옮겨 살다가 5년 후에 돌아 가셨다,

그때부터 향화를 계속 받들었으며 이후 전화로 중단된 것을 1798년 심릉 후 능 아래에 능침을 지으면서

다시 향례를 올리게 되었다,

1898년 수로왕의 능침이 숭선전으로 사액될 때 그 명칭도 덕양전으로 개칭되었으며 1930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91년 문화재 정화사업으로 중건된 것이다,

 

 문이 굳게 잠겨 담장너머로 바라본 덕양전

 

 화계리 화산마을 버스정류장

 

 화산마을

 

 덕양전 뒤 정자나무

 

 왕림사 대웅전

 

 왕림사

 

왕림사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화계리 60

 

 

 

 구형왕릉 주차장 안내판

 

 구형왕릉으로 가는길

 

 뒤돌아본 구형왕릉 주차장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왕 김유신 사대비

김유신 사대비는 구형왕의 증손자인 김유신이 화랑으로 활동하던 청년시절 구형왕릉에 들어와

능을 지키는 시릉살이를 하며 무예를 연마하고 활을 쏘던 곳이라 전하는 곳이다,

지금은 돌단 위에 비석이 하나 서 있는 모습인데 김유신 장군이 어느 방향으로 화살을 쏘았는지는 전하지 않는다,

이를 기념하여 세워 놓은 비가 바로 사대비이다,

김수로왕(시조)-겸지왕(김겸) 8세손-구형왕(김구해) 9세손-김무력-김서현-김유신 

 

 가락국기 비문

 

 황매화

 

 구형왕릉 전경

 

 구형왕릉 홍살문

 

 

 

 구형왕릉 솟을삼문

 

 

 

 

 

구형왕릉

가락국 10대 구형왕릉으로 전해지는 특이한 석조물이다, 동쪽으로 내려오는 경사면에 피라밋 모양으로

자연석을 쌓아올렸다, 위로 올라갈수록 면적을 줄여가며 모나게 일곱 단을 쌓아 올렸는데 전체 높이는 7.1m이다,

각 단 앞부분의 양쪽에는 모서리가 분명하지만 뒤쪽은 경사면에 붙여 돌을 쌓아 모서리가 없다,

네 번째 단에는 가로 40cm 세로 40cm 깊이 68cm의 감실과 같은 것이 설치되어 있다,

감실은 신주를 모시거나 등잔을 두기위해 만들어지지만 여기에서의 용도는 알 수 없다,

앞에는 가락국양왕릉이라 새긴 비석이 있고 돌담으로 주위를 둘렀다,

문무인석, 석수, 상석, 장명등, 등도 배치되어 있으나 근래에 만들어진 것이다,

전구형왕릉이라는 명칭은 확증은 없고 그렇게 전해진다는 뜻으로 부쳐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아래쪽에 있는 암자 부근에 왕산사가 있었다고 기록되었고 지역의 전승에는 약 200년 전에 왕산사에서

활 칼 등과 함께 왕릉에 대한 기록도 나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산을 다 내려 간 입구에는 구형왕과 왕비의 영정을 모시는 덕양전이 있다,

덕양전 경내에는 홍살문, 영정각, 안향각, 정숙당, 추모재 등의 건축물과 연못이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 16일과 9월 16일에 제향이 올려지고 있다,

양왕~양왕은 전쟁을 하지 않고 나라를 선양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구형왕릉 문인석과 무인석

 

 

 

 구형왕릉 호능각

 

 구형왕릉 호능각 솟을대문 앞

 

 왕산 들머리

 

 

 

 

 

 갈림길에서 약수터 방향으로 간다

 

 

 

 임도 이정표에서 약수터 방향을 따른다

 

 

 

 임도 갈림길에서 류의태 약수터 방향으로

 

 

 

 수정궁터 부도탑

 

 

 

 

 

 갈림길 이정표

 

 

 

 

 

 

 

 류의태 약수터

 

 약수터 옆 계곡을 건너서

 

 송림

 

 

 

 너들지대를 지나고

 

 왕능 갈림길

 

 잘가꾸어진 송림

 

 

 

 철쭉에 애워쌓여

 

 송림의 철쭉

 

 송림과 철쭉

 

 

 

 송림과 철쭉

 

농은 민안부 선생과 망경대

고려 공양왕때 예의판서를 지낸 농은 민안부 선생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한 두문동 72인의 유신 가운데

한분으로 고려에 끝까지 충절을 지키기 위해 지리산 기슭인 산청군 생초면 대포리에서 은둔 생활을 하였다,

선생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이곳 왕산 중턱 바위에 올라 송경(고려의 수도)을 향해 절을 하며

고려를 그리워 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선생의 절개와 의리를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망경대라 부르게 되였다,

 

 

 

 망경대 비석 (농은민선생장구지지) 장구~이름 난 사람을 일컷는 말  

 

 망경대에서

 

 망경대에서

 

 

 

 망경대 바위틈의 소나무

 

 

 

 

 

 망경대 비석을 세운 사람들 명단

 

 고려 예의 판서 농은 민선생 장구지지

 

 망경대에서 바라보는 산청일대와 경호강

 

 

 

 

 

 

 

 남산제비꽃 (제비꽃과)

 

 박물관 갈림길 이정표

 

 

 

 필봉산과 왕산

 

 왕산아래 전통한방관광지

 

 전망대에서

 

 

 

 

 

 망바위

 

 

 

 왕산의 진달래

 

 가짜왕산 해발 905.8m 정상석

 

 가짜왕산에서

 

 

 

 왕산 개념도

 

 잘 생긴 큰소나무

 

 큰 소나무 가지 하나를 빌려 앉아서

 

 왕산 필봉산 등산 안내도

 

 평전샘 갈림길 이정표

 

 

 

 왕산 정상 이정표

 

 왕산 정상석

 

 

 

 왕산 정상에서

 

 

 

 왕산 정상 이정표

 

 

 

 필봉산과 향양리

 

 여우재 이정표

 

 여우재 한방휴양지 이정표

 

 필봉산 오름길 갈라진 바위

 

 금서면 향양리와 지리산 능선

 

 필봉산에서 바라보는 향양리

 

 향양리를 내려다보며

 

 필봉산정상 이정표

 

 필봉산 정상 뽀족한 바위

 

 필봉산에서 바라보는 왕산

 

 필봉산에서 내려다본 전통한방관광지

 

 필봉산 정상석

 

 

 

 필봉산 정상에서

 

 

 

 

 

 

 

 필봉산 정상에서

 

 필봉산 정상에서

 

 필봉산에서 바라본 산청군 소재지

 

 필봉산을 다녀간 선답자들의 발자취

 

 

 

 

 

 필봉산를 내려서며 큰바위에서

 

 갈림길 이정표 (삼거리인데 우리가 가는 방향은 표기가 안됨) 필봉산을 내려서며 이정표에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뒤볼아본 필봉산 서서히 녹음이 짖어져 간다,

 

 갈라진 바위

 

 깨진바위

 

 깨진바위

 

 

 

 금붓꽃 (붓꽃과)

 

 안부갈림길 이정표 앞에서 강구폭포 방향으로 내려선다,

 

 

 

 

 

 하산길

 

 홀아비꽃대

 

 

 

 

 

 하산길

 

 

 

 홀아비꽃대

 

 새둥지

 

 송림길

 

 

 

 전통한방관광지 옆 광구계곡

 

 한방전통관광지

 

 

 

 

 

 동의본가 (공사중)

 

 동의보감 둘레길 이정표

 

 출렁다리

 

 

 

 출렁다리 위에서

 

 

 

 출렁다리를 건너며 바라본 광구계곡

 

 활짝핀 왕벗꽃

 

 오늘 산행을 끝내고 뒤돌아본 둘레길

 

 

 

 전통한의원 (본디올 한의원)

 

 

 

 

 

 본디올 한의원 가마솥

 

 본디올 한의원 탕제원

 

 전통한방관광지

 

 전통한방관광지

 

 예쁜곰

 

 의기양양 호랑이

 

 

 

 

 

 전통한방관광지 호랑이

 

 

 

 

 

 

 

 

 

 

 

 전통한방관광지 놀이공원

 

 

 

 벼룩나물 (석죽과)

 

 멋진소나무와 미녀

 

 장생문

 

 

 

 

 

 

 

 

 

 

 

구암 허준 (1546~1615)

                                                                                                          본관은 양천, 자는 청원, 호는 구암

출생과 성장

허준은 1546년(명종1년) 지금의 서울 특별시 강서구 가양동에서 아버지 허론과 어머니 김씨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양천허씨의 시조인 허선문의 20세손이다, 할아버지 곤은 무관으로 경상우수사를 지냈고

아버지 론 역시 무관으로 용천부사를 지냈다, 허준은 어릴 때 경상도 산청으로 이사하여 이곳에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허준은 이곳에서 어려서부터 의사수업을 시작했다,

그는 서자로 태어났기 때문에 신분제 사회에서 벼슬길로 나가지 못하고 당시 중인이나 서얼들의 업으로

되어 있던 의학의 길을 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허준의 총명과 열성은 이미 20대에 그를 전국적으로 유명한

의사가 되게 했다, 1569년 6월 그의 나이 24세 되던 해 부제학 유희춘의 부인을 치료하기 위해

서울로 초치되었고 이듬해에는 유희춘의 병까지 치료하게 되어 서울 장안에서 명성이 높았다,

 

내의원 생활

허준이 내의원 취재에 통과한 것은 1574년(선조7년) 그의 나이 29세 때로 상당히 늦은 나이에 궁중의사로서의

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내의원에 들어간 다음해부터 어의로 선임되어 안광익과 더불어 임금의 병을

진찰하고 효험이 있자 임금으로부터 신망을 얻게 되었다, 1578년 9월 내의원 첨정으로 있을때

당시에 새로 출판된 )신간보주동인유혈침구도경)을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았다,

1587년에는 임금의 건강이 회복되었기 때문에 내의원 책임자와 어의들이 모두 포상을 받았는데

허준의 태의 양예수, 안덕수 등과 더불어 녹피 1영을 하사받았다,

그러자 정원 사헌부 사간원에서 일제히 나서서 왕자를 치료한 것은 의관으로서 의당 해야 할 일이고

비록 공이 있다 해도 의관에게 당상의 가자를 내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으므로 취소할 것을 왕에게

여러 번 간청했으나 선조가 신하들의 거듭된 요구를 물리쳤다,

1592년에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성들이 살상되고 왕은 의주까지 피신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허준은 선조의 건강을 돌보았다, 이때의 공로로 허준은 뒷날 공신의 대열에 끼게 된다,

1595년 왕이 별전편방에 나와 의관인 허준 등으로부터 침치료를 받는데 약방 도제조 김응남, 제조 홍진,

부제조 오억령 등이 입시했다, 1596년 동궁인 광해군의 병을 고친 공로로 허준은 가자되고 김응탁, 정예남은

승직되었다, 이에 허준은 그벼슬이 정헌대부 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즉시 간원들이 나서서 의관들의 가자를

개정할 것을 청했으나 선조가 공로가 있는 자들이다, 라고 하여 듣지 않았다,

같은 해에 선조가 허준에게 완비된 우리나라 의서를 찬집하라고 일렀다, 허준이 유의 정작과 태의 양예수,김응택,

이명원, 정예남 등과 편국을 설치하고 책의 요점을 잡아가는 시점에 정유재란이 일어나 의관들이 흩어져 작업은

자연히 중지되었다, 이에 선조가 허준을 다시 불러 허준 혼자 책임지고 새로운 의서를 만들라고 하면서

내장방서 500권을 내어주며 참고하도록 조치했다, 1600년 수의(내의원의 책임자) 양예수(지사:정2품)가

사망함에 따라 허준이 수의가 되었다,

1604년 임금이 호성공신의 교서를 발급하여 의관으로서는 허준과 이연록 두 사람을 3등에 책훈하고

허준은 양평군에 봉작되었다, 1606년에는 임금의 병을 치료한 공로로 양평군 정1품 보국승록 대부로 승급했다,

이것은 벼슬로서는 최고의 품계인 만큼 신하들의 반대가 극심하여 수십차례에 이르렀다,

계속되는 신하들의 반대 때문에 선조도 결국 허준의 가자를 보류했다, 1607년에는 임금의 병이 위중하고

잘 낫지 않았는데 이것은 허준이 약을 잘못 썼기 때문이라 하여 연일 조정에서 수의 허준을 벌주는 일로 논의가

복잡했으나 선조가 벌을 주기보다 의술을 다하게 해야 한다고 막아섰다,

1608년에 마침내 선조의 병세가 급박하다가 돌연히 사망했다, 선조의 병은 이미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사헌부나 사간원에거 가만 있을 리 없었다, 광해군 즉위초부터 연일 계속되는 계청에 허준을 보호하던

광해군도 마침내 견디지 못하여 허준의 직책을 좌면하고 거처를 제한하는 벌을 내리도록 승인했다,

그러나 그해가 가기 전에 허준에게 내린 벌을 해제했다, 이런 와중에서도 허준은 (동의보감)의 찬집에

노력하여 1610년(광해군 2년) 마침내 완성했다, 이후 어의로 있다가 1615년 죽었다,

그의 사후 광해군은 생전에 보류되었던 보국승록대부를 추증했다,

 

 휴양텔 (동의보감 약초목욕탕)   요금 15,000원

 

 산청 한의학 박물관

 

 

 

신의 류의태 (실존 인물이 아님)

류의태 선생은 1516년(중종 11년) 산청군 신안면 상정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 선생의 스승으로 조선 중기 최고의 신의로 알려져 있다, 선생의 몸을 제자 허준에게

시술토록 하여 해부의학의 효시를 이룬 살신성인의 의술가였다,

산청군 (당시 산음현) 금서면 화계지구에서 의술활동을 하였으며 왕산의 자생약초에 본 약수터의 물로

탕액을 조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물관 앞에서 바라본 황매산 조망 안내판

 

 박물관 내부

 

 

 

 

 

 

 

 

 

 박물관 매표소

 

 

 

 전통한방관광지 곰

 

 

 

 곰 내부의 벽화

 

 

 

 

 

 

 

 

 

 곰 입안에서 바라보는 관광지

 

 

 

 장생문 뒤편 불노문

 

 차량을 회수하기 위해 또다시 찾은 덕양전 홍살문과 외삼문 (아침과 달리 굳게 잠겨 있던 문이 열려있어 덕양전을 찬찬히 다시 돌아 본다,)

 

 왕산숙-종친들의 종사교육관

 

 해산루-넓은 바다에 우뚝선 산이라는 뜻이다, (군왕이 백성을 굽어 살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락국구형왕신도비-가락국 마지막왕 양왕의 공적을 기록한 비로 비문은 왕은 가락국의 10대 임금으로 이름은 구형이고 양은 그의 시호이다 라고 시작하고 있다,

 

 화수정-만개한 꽃나무 (하나의 뿌리에서 수많은 꽃을 피운다는 의미 총친들이 모여 면학을 의논하고 정사를 논하고 쉬는 공간이다)

 

 연산문-신을 맞이하고 보낸다는 의미 (내삼문) 

 

 영정각-영정을 모시는곳 (가락국 마지막 왕과 왕후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덕양전

                                                              문화재 자료 제50호

가락국 10대 왕인 양왕과 계화왕후 두분의 위패를 봉안한 곳으로 매년 춘추대제를 봉행한다,

 

 수강궁-인왕의 침궁으로 원래는 왕대 아래 왕릉 옆에 있었으나 1930년 이곳으로 옮겼다,

 

 덕양전

 

 안향각-제례에 쓰이는 향 초 제기 등을 보관하는 곳이다,

 

 해산루

 

 가락국구형왕신도비  

 

 굳게 닫혀 있다가 열려있는 문

 

 또 다시 정자나무 아래를 걷는다

 

 화계리 민가

 

 망경루 농은민안부선생 약사 비

 

 망경루

 

 

 

 다시 찾은 왕림사 입구

 

 소박한 왕림사

 

 구형왕릉 주차장에서 내려다 본 화산마을

 

 

 

 

 

 구형왕릉

 

 또 다시 찾은 구형왕릉

 

 

 

 

 

 구형왕릉 홍살문

 

 계곡 건너편에서 바라본 호능각

 

 왕산대장군 한방여장군

 

 산청엑스포 행사공식 캐릭터 준이와 금이

 

 차를 회수하여 약초목욕탕에서 내려다본 관광지 엑스포 행사준비로 공사가 한창 진행중

 

 전통한방관광지 십장생

 

 

 

 

 

 

 

 

 

 

 

 남사마을 돌담길

 

 

 

 남사마을 이정표

 

 남사예담촌

 

 경화당 (남사예담촌 노인회관)

 

 

 

 예담원

 

 남사마을 돌담길

 

 남사마을 돌담길

 

 

 

 

 

 

 

 최씨고가 가는길

 

 

 

 최씨고가 대문

 

 

 

 최씨고가

 

 

 

 경화당 은행나무

 

 남사마을 버스정류장 주변

 

 남사예담촌 돌담길

 

나의 사람아 / 김민식

 

언제 보아도 웃음띤 얼굴 / 언제 들어도 다정한 음성

언제 까지나 함께 있어요 /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해가 없어도 살수 있지만 / 달이 없어도 살수 있지만

당신 없이는 견딜수 없내 /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지난 꿈엔 당신과 여행을 떠났어요

 하얀 바다가 에서 파랑새를 봤어요

해가 없어도 살수 있지만 / 달이 없어도 살수 있지만

당신 없이는 견딜수 없내 /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지난 꿈엔 당신과 여행을 떠났어요

하얀 바다가 에서 파랑새를 봤어요

해가 없어도 살수 있지만 / 달이 없어도 살수 있지만

당신 없이는 견딜수 없내 /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내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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