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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여행/국내여행

청도여행

     2019년 03월 10일 일요일

      *하루종일 비

      *대비사~대비지~청도박곡동석조석가여래좌상~방음동새마을동산~운문사

      *옆지기와 둘이서  

대비사 대웅전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桐華寺)의 말사이다.

567년(진흥왕 28) 한 신승(神僧)이 창건하여 소작갑사(小鵲岬寺)라 이름했다고 한다.

이 신승은 557년운문산에 들어와 지금의 금수동(金水洞)북대암(北臺庵) 터에 초암을 짓고 3년 동안 수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과 골이 진동하여 새와 짐승이 놀라 우는 소리를 듣고

그 곳이 오령(五靈)이 숨어 사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절을 짓기 시작하여 중심부에 대작갑사(大鵲岬寺 : 지금의 雲門寺), 동쪽에 가슬갑사(嘉瑟岬寺),

남쪽에 천문갑사(天門岬寺), 서쪽에 이 절인 대비사, 북쪽에 소보갑사(所寶岬寺)를 각각 지었는데,

역사가 다 끝난 시기가 567년이었다고 한다.

589년(진평왕 11)원광(圓光)이 중창하였고, 대비갑사(大悲岬寺)로 이름을 바꿨다.

고려 인종 때에는 원응국사(圓應國師)학일(學一)이 중창했다. 일제강점기에 대웅전을 중수했으며,

1950년 6.25를 전후하여 금천면민들의 성금으로 주지 응교(應敎)가 다시 대웅전을 중수했다.

산내 암자로는 도솔암(兜率庵)과 옥련암(玉蓮庵)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보물 제834호 대웅전과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은 조선 중기의 것이다.

유물로는 많은 수의 부도들이 있는데, 이 중에는 소요 태능(逍遙 太能)과 취운 학린(翠雲 學璘) 등의 부도도 있다.


봄 비가 새 생명의 탄생을 재촉한다,

여기저기 불쑥불쑥 돋아나와 아우성치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 자리매김한다,

산천초야의 진풍경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생기가 돋아나는 대자연속으로~~~

  ▲사천왕상

  ▲사천왕상


  ▲대비사 용소루




  ▲홍매화






  ▲홍매화와 용소루

  ▲대비사 대웅전


  ▲대비사의 목련도 곧 꽃망울을 터트릴 기세다,

  ▲삼성각으로 가는길








  ▲용두 관세음보살




  ▲향로각



  ▲부도탑


  ▲꽃망울을 터트리는 산수유 꽃




  ▲대비지에서




  ▲청도 박곡동석조석가여래좌상 보물 제203호







  ▲산수유 꽃

  ▲방음동 새마을동산에서

  ▲새마을 정에서



  ▲매화꽃 향기에 취해



  ▲운문사로 가는길

  ▲운문사의 처진소나무








  ▲예불을 끝내고 대웅보전에서 나오시는 스님들


운문사 대웅보전

운문사는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호거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 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청도군에 속해 있으나 교통 편의상 대구와 생활권이 밀접해 있다.

서기 560년 (신라 진흥왕 21년)에 한 신승(神僧)에 의해 창건되어 원광국사, 보양국사, 원응국사 등에 의한

제8차 중창과 비구니 대학장인 명성스님의 제9차 중창불사에 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경내에는 천연기념물 180호인 처진 소나무와 금당 앞 석등을 비롯한 보물 7점을 소장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고찰로서,

사찰 주위에는 사리암, 내원암, 북대암, 청신암, 문수선원의 5개의 암자와 울창한 소나무, 전나무 숲이

이곳의 경관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특히, 이곳은 신라 삼국통일의 원동력인 세속오계를 전한 원광국사와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 선사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도량이다.

지금은 260여 명의 학승들이 4년간 경학을 공부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교육기관이 자리한 사찰이다.

(운문산=호거산) 높이 1,188m 로 태백산맥의 가장 남쪽에 있는 운문산은 동으로 가지산

남으로 재약산, 영축산 등과 이어져 있어 산악인 사이에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고 있다.

운문산은 산세가 웅장하며 나무들이 울창하여 등산객이 많이 찾는 산이다.

이곳에는 운문사를 비롯한 크고 작은 절과 암자가 있고, 주변 경관은 매우 아름답다.

  ▲처진 소나무 (천연기념물 180호)


원응국사비 (보물 제316호)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에 있는, 원응 국사의 행적을 기록한 고려 시대의 석비. 비의 뒷면에는 제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과 머릿돌은 소실되었고, 세 쪽으로 잘린 비 몸만 복원되어 있다. 원응 국사가 입적한 해인

고려 인종 22년(1144)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정식 명칭은 ‘청도 운문사 원응 국사비’이다.

속성은 이씨. 자는 봉거(逢渠). 서원 보안(保安) 출신이다.

11세에 출가하여 13세에 계를 받았다. 혜함에게 선지를 깨닫고, 경·율·론을 연구했다.

특히 〈대반야경 大般若經〉에 능통하여 삼매력(三昧力)을 얻어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쳤다.

1085년(선종 2) 선불장에서 우등으로 뽑혔다. 당시 의천이 천태종을 세우자 많은 승려들이 천태종으로 옮겨갔으나

그는 의연히 홀로 적을 옮기지 않았다. 1099년(숙종 4) 의천이 홍원사(弘圓寺)에서 원각회(圓覺會)를 베풀면서

그를 부강사(副講師)로 삼았으나 선과 교를 섞을 수 없다 하여 사퇴하고, 다만 강석에만 참여했다.

이때 왕자 원명국사(圓明國師)가 갑자기 숨이 끊어지고 따뜻한 기운이 없어져서 살려낼 도리가 없었다.

의천이 그에게 구해줄 것을 청하자 가만히 대반야경을 염하니 얼마 뒤에 살아났다.

예종이 즉위한 후 삼중대사가 되었고, 1108년에는 선사가 되어 내제석원(內帝釋院)에 머물렀다.

1114년 대선사가 되고, 1122년(인종 즉위) 왕사에 올랐다.

고려 중기 왕사와 국사는 주로 화엄종과 유가종(瑜伽宗)에서 나왔는데, 선종 계열인 그가 왕사가 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1129년 운문사로 물러가 그곳에서 죽었다. 운문사에 비가 전한다.

국사로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원응(圓應)이다.




  ▲봄 비는 온 종일 질퍽하게 내린다, 비 내리는 운문사를 떠나 속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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