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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사진/부부 산행

남산 (금오봉)

     2018년 01월 21일 일요일

      *맑음 (미세먼지로 대기질 제로)

      *나정~양산재~월암재~보광사~일성왕릉~금오정~상사암~금오봉~상사암~바둑바위~마애석가여래좌상

         ~배동 석가여래삼존입상~삼불사~태진지~지마왕릉~포석정~창림사지삼층석탑~남간사지당간지주

           ~월암재~양산재~나정   13.6km   5시간6분소요

      *옆지기와 둘이서 산행

 

남산 (금오봉) 468m

미세먼지로 대기질제로 시계제로~~~

그러나 가고자하는 맘 만은 의기충천하다,

벌써 봄이 저만치 다가왔는지 오늘의 날씨는 봄기온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산자락으로 속 속 모여든다,

그 들과 함께 오늘도 옆지기랑 남산 보물순례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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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마를 공터에 홀로두고 나정으로 올라간다,

 

 

 

나정 (사적 제245호)

6촌의 촌장들이 신라를 다스리던 시절의 일이다,

어느 날 남산 기슭에 있는 나정에서 상서로운 백마가 알 앞에 무릎을 끓고 있다가 하늘로 올라갔다,

알은 환한 빛을 내더니 이윽고 알이 깨지고 남자아이 한 명이 나왔는데

커다란 박 같은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성을 박이라 하고 이름을 혁거세(세상을 밝게 다스린다는 뜻)라 하였다,

박혁거세는 13세 되던 해(BC 57년)에 6부 촌장들에 의해 왕으로 추대되었으며

나라 이름을 서라벌이라 지었다,

최근에 실시된 발굴조사에서 팔각건물터 등이 확인 되었다,

 

 

 

 

 

 

 

 

 

 

 

 

 

 

 

  ▲양산재로 가는길

 

 

 

양산재 (6부 촌장의 위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

6부촌장은 신라가 건국되기 전 진한땅에 알천양산촌.돌산고허촌.취산진지촌.무산대수촌.금산가리촌.명활산고야촌의

여섯촌을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는데 서기전 57년에 알천언덕에 모여 알에서 탄생한 박혁거세를

여섯촌장이 추대하여 신라의 첫 임금이 되게 하니 이해가 바로 신라의 건국년이 되었다,

그후 신라 제3대 유리왕이 6부촌장들의 신라건국공로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6부의 이름을 고치고

각기 성을 내리게 되니 바로 양산촌은 이씨. 고허촌은 최씨. 진지촌은 정씨

대수촌은 손씨. 가리촌은 배씨. 고야촌은 설씨이다,

이로써 신라에 여섯 성씨가 탄생되었고 각기 시조 성씨가 되었다,

이 사당은 1970년 이들 6부촌장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 

 

 

 

 

 

 

 

 

 

  ▲양산재를 둘러보고 나온다,

 

 

 

 

 

 

 

 

 

 

 

 

 

 

 

  ▲월암재 (선조임금때 임진왜란이 일어나 공을 세운 김호장군 재실)

 

 

 

 

 

 

 

 

 

  ▲탑동마을을 지난다,

 

 

 

 

 

 

 

경덕사

경덕사는 시조 문양공(文讓公 : 휘 祗) 및 중시조 무열공(武烈公 : 휘 玄)을 받들어 모시는

배문(裵門)의 제1 성지이다. 경주 裵氏는 신라 6촌장의 한분으로 신라개국 좌명원훈에 오른

금산가리촌장(金山加利村長)문양공(文讓公)께서 유리왕 9년 (서기 32년)에 裵氏 성을 하사받은 데서 비롯된 성씨로

한국에서는 가장 오래된 명문이다. 우리 裵氏는 경덕사 사당을 구심점으로 숭조상문하면서,

후손들에게 조상을 경모하고,삼한갑족의 긍지와 명예, 전통을 드높여 주는 동시에,

2000여년의 찬란한 씨족사를 일깨워주는 교육현장으로 삼아 길이 보전하고 있다.

 

 

 

 

 

  ▲보광사

 

 

 

  ▲보광사 대웅전

 

 

 

 

 

 

 

  ▲일성왕릉으로 가는길

 

 

 

 

 

 

 

 

 

일성왕릉 (신라 제7대 왕. 재위 134~154)

1969년 8월 27일에 사적 제173호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은 3만 4,618㎡이다. 무덤의 지름은 15m, 높이는 5.3m이다. 일성왕의 성은 박씨이며, 신라 제3대 유리왕(유리이사금)의 맏아들이다.

일지갈문왕(日知葛文王)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왕비는 지소례왕(支所禮王)의 딸 박씨이다.

일성왕은 134년에 즉위하여 154년에 승하하였으며 20년간 재위하면서 농토를 늘리고 제방을 수리하여

농업을 권장하고 민간에서 금·은·옥의 사용을 막아 검소한 생활을 장려하였다. 

 

 

 

 

 

 

 

 

 

 

 

  ▲멋진 송림을 걷는다,

 

 

 

 

 

 

 

 

 

 

 

 

 

 

 

 

 

 

 

 

 

 

 

 

 

남산신성

경주 남산신성(慶州 南山新城)은 신라의 성곽이다. 1963년 1월 21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2호로 지정되었다.

경주 남산의 북쪽에 있는 신라 산성으로 ‘신라 남산성’이라고도 한다.

신라 진평왕 13년(591)에 쌓았다고 전하며, 신라 문무왕 19년(679)에 성을 크게 고쳐 쌓았는데,

지금 성벽이 잘 남아있는 부분은 이때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남산 꼭대기를 중심으로 돌로 쌓았으며,

성 안에는 3개의 커다란 창고가 있어 무기와 식량을 저장하고 전쟁에 대비하였다.

성 부근에서 발견된 남산신성비에는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와 일정한 길이의 성벽을 맡아 쌓았으며,만일 3년 이내에 성벽이 무너지면 벌을 받을 것’이라는 서약의 글과 함께 관계한 사람들의 벼슬·성명·출신지가 새겨져 있다.

경주평야 일대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이 산성은 서쪽의 서형산성과 동쪽의 명활성,

그리고 북쪽의 북형산성과 함께 신라의 왕도를 호위했던 성으로서 역사적 의의가 있으며,

지금도 큰 창고 자리에서는 불에 탄 쌀이 나온다고 한다.

 

 

 

남산일주도로 우리아들 기도처

20여년전 동문가족들과 경주 남산을 찾았다,

남산을 오르던 아들녀석이 제 엄마가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다 들어 준다니까,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떨구고는 우리아빠 담배 피지않게 해주세요 하는게 아닌가,

그 날 이후 난 아들녀석의 소원대로 담배를 끊어 버렸으니까

아들녀석의 입장에서는 소원 100% 이루어 지는 기도처인셈이다,

이 곳을 지날때마다 그때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되살아 나곤 한다,

 

  ▲금오정 오름길

 

 

 

  ▲금오정에서

 

 

 

 

 

 

 

 

 

  ▲상사바위

 

  ▲시계제로 대기질 꽝이다,

 

 

 

 

 

 

 

  ▲남산 금오봉에 오르다,

 

 

 

 

 

 

 

  ▲상사바위

 

 

 

 

 

 

 

 

 

  ▲바둑바위에서

 

  ▲마애석가여래좌상

 

 

 

 

 

 

 

 

 

  ▲차 한잔하고 갈까 ???

 

  ▲삼불사 방향으로

 

 

 

 

 

 

 

 

 

  ▲배리 삼존불 (보물 제63호)

 

 

 

 

 

 

 

  ▲삼불사

 

 

 

 

 

 

 

 

 

 

 

 

 

 

 

 

 

  ▲태진지

 

 

 

 

 

 

 

지마왕릉 (신라 제6대 왕. 재위 112~134)

경주지마왕릉은 1971년 4월 21일 사적 제221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9,488㎡이다.

지마이사금은 제5대 왕인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의 아들로서 성이 박씨(朴氏)다.

어머니는 사성부인(史省夫人)이며 왕후는 김씨(金氏) 애례부인(愛禮夫人)으로 갈문왕(葛文王)마제(摩帝)의

딸인데 아들은 없었다.

지마이사금은 대략 23년의 재위기간 동안 가야·왜·백제와 군사적인 대치를 벌이는가 하면 외교관계를 맺기도 하였다.

 

 

 

 

 

 

 

 

 

 

 

 

 

포석정

포석정은 신라 왕실의 별궁으로 역대 임금들이 연회를 베풀던 곳이다,

지금은 정자 등의 건물이 모두 없어지고 마치 전복같이 생긴 석조 구조물만 남아있으며

화강석으로 만든 수구의 길이는 약 22m이다,

임금은 이곳에서 신하들과 더불어 잔을 띄우며 시를 읊었을 것으로 보인다,

포석정에 대한 기록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이 신하들과 어울려 여흥을 즐길 때

남산의 신이 왕 앞에서 춤을 추자 왕도 따라 추게되어 이로부터 어무산신무라는 신라춤이

만들어졌다고 전해 준다. 경애왕 4년(927)왕이 후백제 견훤 군대의 습격을 받아 최후를 마친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상곡수연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있었으나

오늘날까지 그 자취가 이처럼 잘 남아있는 것은 매우 드문 일로

당시 사람들의 풍류와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장소이다,

 

 

 

 

 

 

 

 

 

  ▲우측길로 돌아 창림사지 삼층석탑으로 간다,

 

  ▲차량진입불가 방향으로 과수원을 지나 창림사지로~

 

 

 

  ▲창림사지 삼층석탑

 

 

 

 

 

 

 

 

 

 

 

 

 

  ▲탑동 오늘의 출발지를 향해간다,

 

 

 

 

 

남간사지 당간지주 (보물 제909호) 

절에서는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사찰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이 깃발을 매달아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의 좌우에 세워 단단히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드물게 당간이 남아 있으나 대개는 두 지주만 남아 있다.

이 당간지주는 남간사의 옛터에서 약 500m 떨어진 논 가운데에 세워져 있다.

논을 경작하면서 지주의 아래부분이 약 50cm정도 드러나 있으며, 바닥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기단부가 없어서 기단 위에 당간을 세우던 받침돌도 찾아볼 수 없다.

지주 안쪽 면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구멍을 세 군데에 뚫어 놓았는데,

특히 꼭대기에 있는 것은 십(十)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형태이다.

특별한 장식이 없는 소박하고 간단한 형태의 당간지주로, 보존된 상태도 양호한 통일신라 중기의 작품이다.

 

 

 

 

 

  ▲오늘의 산행출발지 나정으로 되돌아와 잠시 쉬어간다,

 

 

 

 

 

  ▲포석정옆 남산수라간을 찾아 늦어진 점심을~~(경북 경주시 포석로 748  TEL), 054-775-5011)

 

  ▲전복 돌솥밥 정식 맛나게 먹고 남산을 떠나 마이 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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