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05월 22일 화요일 (석가탄신일)
*맑음 (오후로 가면서 차차흐리고 비)
*명성황후생가~세종대왕릉~효종대왕릉~홍원막국수~신륵사~여주도자기축제
*옆지기와 둘이서
세종대왕 (1397~1450) (재위 1418~1450)
세종은 1397년(태조 6)에 태종과 원경왕후 사이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도(祹), 자는 원정(元正)이다.
위로는 14년간 세자의 자리에 있다가 폐위된 양녕대군과 세종의 세자 책봉 후 불가에 귀의한 효령대군이 있으며,
아래로 성령대군이 있다. 세종은 1418년(태종 18) 6월에 양녕대군을 대신해 세자에 책봉되었으며,
두 달 뒤 태종의 선위로 왕위에 올랐다.
▲숙소인 1123호에서 남한강을 가로질러 신륵사를 바라본다,
▲강가에 있는 유일한 신륵사, 부처님 오신날인데 이른아침이라 조용하다,
▲여주 첫 여행지로 명성황후 생가를 찾았다,
▲명성황후와 고종황제
명성황후 추모비
명성황후는 1851년 9월 25일 경기도 여주 근동면 섬락리에서 민치록(閔致祿)과 한산 이씨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태종의 비인 원경왕후와 숙종의 비인 인현왕후를 배출한 명문가였다.
흥선대원군에 맞서 개화정책을 펼친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의 왕비. 쇄국정책을 펼쳤던 흥선대원군의 실각 후
정권을 장악하여 개화정책을 펼쳤으며, 여성부원군 치록의 외동딸로 16세에 왕비가 된 후
대원군과의 불화가 지속되자 반대원군 세력을 규합하여 탄핵하고 정권을 장악했다.
1876년 강화도조약,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 가운데 있었다.
3국간섭으로 일본의 대륙침략 기세가 꺾이자 친러성향으로 굳혔다.
명성황후와 그 세력을 일본의 조선 병합에 가장 큰 장애로 여겼던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일으킨
1895년 을미사변 중에 시해당했다.
사후 명성황후로 격상되었으며 양주 숙릉에 묻혔다가 1919년 고종 사후 홍릉으로 이장되었다.
▲명성황후가 탄생한 방
▲명성황후의 유년시절
▲명성황후 탄강구리비 (명성황후가 어렸을 때 공부했던 방이 있었던 자리이며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마을 이란 뜻)
▲민유중 (1630~1687) 신도비 (인현왕후의 아버지로 조선 제19대 숙종의 장인, 명성황후의 6대조 할아버지)
▲감고당 (조선 19대 숙종의 비 인현왕후의 친정집, 명성황후가 8세 이후 왕비 간택 전까지 살았던 집) 서울 안국동 덕성여고 본관에 있던 건물로 여주시로 이전 복원
▲명성황후 생가 소원바위
▲인현왕후와 명성황후가 기거했던 감고당
▲감고당 사랑채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효종대왕 영릉 가는길
▲세종대왕 영릉 주변 복원공사로 인하여 효종대왕 영릉쪽에서 왕의숲길따라 우회하여 세종대왕릉으로~~
▲세종대왕릉 가는길
▲세종대왕 소현왕후 합장릉 (영릉) (소현왕후 1446년 사망, 세종대왕 1450년 사망)
▲복원공사가 한창 진행중인 세종대왕릉 주변
▲왕의숲길 따라 효종대왕릉으로
▲효종대왕릉 홍살문
▲효종대왕릉 아래에 있는 인선왕후릉
▲효종대왕릉 (1619~1659) (재위 1649~1659)
▲인선왕후릉 (1618~1674)
▲효종대왕 재실
▲효종대왕릉 회양목 천연기념물 제495호
▲왕릉을 둘러보고 막국수 맛집인 홍원막국수집을 찾았다, 번호표를 받아 10여분 기다리다 식사
▲막국수를 맛나게 먹고 신륵사로 달려왔다,
▲신륵사 남한강변에서
▲남한강 유람선
▲다층석탑 보물 226호
여주 도자기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