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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여행/소모임

남도여행 (해남 완도)

     2015년 11월22일 일요일

      *흐린후 차차 맑아짐

      *영암(독천낙지마당)~오소재~오심재~북미륵암~천년수~만일재~구름다리~두륜산(두륜봉)

          ~진불암~대흥사~매표소~완도읍~천지횟집~그랜드사우나모텔

      *신소형회 회원15명과 함께

두륜산(두륜봉) 630m

함께 동고동락하던 옛 동료들과 어우러져 1박2일 남도여행길에 오르다, 

 오소재-오심재-북미륵암-천년수-만일재-구름다리-두륜봉-진불암-대흥사-매표소

 

 

  전남 영암 독천낙지거리

  낙지호롱구이

  해남으로 가기전 영암 독천낙지거리를 찾아 독천낙지마당에서 맛나게 낙지요리로 점심을 먹고 두륜산 오소재로 떠난다,

  낙지연포탕

 

 

  두륜산 오소재 주차장에서 산행팀 케이블카팀 잠시 헤어짐을 갖고

  오소재약수터를 지나

 

  오소재 산행들머리

 

 

 

  오심재 오름길

 

  오심재에서 바라본 노승봉

  오심재 이정표

  오심재에서 바라본 고계봉

  오심재에 핀 진달래꽃

  북미륵암으로 가는길

 

  북미륵암 요사채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북미륵암 아랫삼거리

 

 

 

 

 

 

 

 

  천년수 (수령 1100년)

 

 

  만일재에서 바라본 가련봉

 

  만일재에서 바라본 두륜봉

  두륜봉 오름길

 

 

 

  두륜봉을 오르는 일행들

  두륜봉 구름다리

 

 

  두륜봉 구름다리에서

 

 

 

 

 

 

 

  두륜봉에서 가련봉을 바라보니 가스가 시야를 가린다,

 

 

 

 

  두륜봉 정상에서

 

 

 

 

 

 

  진불암으로 내려가는길

 

 

 

 

  진불암 입구 삼거리

 

  진불암에서

 

 

  진불암

 

  진불암에서 함께한 일행들

 

  대흥사 갈림길(물텅거리 삼거리) 우측으로 내려선다,

 

 

 

 

 

 

 

  대흥사 표충사 도착

 

  대흥사

 

초의대사

전남 무안군(구 나주군) 삼향면에서 출생했다.
어머니가 큰 별이 품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정조 10년 병오년(1786) 4월 5일에 태어났으니

추사 김정희와 동년생이다. 5세 때 강에서 놀다가 깊은 곳에 빠졌었는데 건져준 사람이 있었고,

15세 때 나주군 남평에 있는 운흥사에 입산하여 벽봉민성(碧峯敏性)을 은사로 하여 출가 삭발하고,

19세 때 해남 대흥사로 가는 도중 월출산에 올라 산세가 기이하여 아름다움에 빠졌다.

저도 모르게 산등성이에서 바라보다 마침 바다에서 떠오르는 달이 황홀한지라 맺혔던 가슴이 툭 터졌다.

대흥사에서 완호대사(玩虎大師)를 계사로 하여 구족계를 받고 삼장(三藏)을 수학하여 21세 때 대교(大敎)를

졸업하였다. 그 후 전남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쌍봉사로 옮겨 금담선사(金潭禪師)로부터 선을 배우며 토굴을 파고

참선에 전념하다가 24세 때 다시 대흥사로 돌아와 연담대사에게 건당하여 초의라는 당호를 얻었다.

초의보다 24세 위인 다산 정약용은 천주교의 지도인물로 순조1년(1801)에 투옥되었다가 전남 강진 신지도로

유배되었었다. 이때 초의와 다산은 친분을 맺고 그로부터 유학을 배우고 시문을 익혔다.

초의는 또한 삼장을 배우면서 틈틈이 범서를 공부, 범서에도 능했으며 정화(幀畵)를 잘 그려 오도자(吳道子)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칭송받았다. 이로 보아 대사는 다방면에 다재다능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사가 30세에 처음으로 금강산 등지의 산천의 선경을 찾아다닐 때 한양에 들러 여러 인사 및 선비들과 교루하기

시작하였다. 완당 김정희와 처음 만난 것은 완당이 연경(북경)에서 돌아온 이듬해인 25세때라고도 하고,

일설은 완당이 성균관 대사성이 된 51세 때라고도 한다. 초의와 완당의 친분은 각별하여 완당이 제주도에 9년간

유배될 때 대사는 다섯 차례나 위안하러 다녀왔다. 그 중 한 차례는 완당과 반 년 동안이나 함께 지낸 깊은 우정을 갖고 있었다. 대사가 지리산, 금강산, 한라산등 명산을 찾아 선경에 도취하다가 32세 때 6월 경주 불국사에 들었을

크게 깨쳤다 한다. 41세 때 대사는 두륜산 대흥사의 뒷편에 일지암(一枝庵)( 혹은 쾌년각(快年閣)이라고도 함))을 짓고 이곳에서 홀로 지관참선하기를 40여 년간 전심전력하였다. 그러나 초의는 교학에도 소홀하지 아니하였고 특별히

선에만 치우치지도 아니하여 선교겸수를 주장하였다. 어느날 한 스님이 찾아와 묻기를
"스님은 선에만 전념하십니까?" 하니 스님이 대답하되 "근기가 약하면 선에만 전념하거나 교에만 전념하지만 이는

실로 둘 다 다름이 없는 것이니 내가 어찌 이것만을 고집하겠는가. 생각하건대 교에만 전념하는
자가 허물이 없을 수 없으며 선만을 고집하는 자 또한 모두 도를 얻는 것이 아니니라"고 대답하였다.

대사의 인품이 고매할 뿐만 아니라 풍채가 위엄이 있고 범상이 뛰어나서 옛날 존자의 모습을 닮은지라 여든이 넘어서도 소년같이 건강한 모습이 었다고 한다. 초의의 인간 됨됨이는 승려 이전에 인간의 참모습이 엿보인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갔다는 말을 듣고 위안하러 갔었는데 풍랑이 매우 심하였었다. 그러나 스님은 조금도 당황하지 아니하고 대담하였다. 신헌(申櫶)이 녹원으로 유배갔을 때도 몸소 위안하러 다녀온 인정어린 우정은 초의의 인품이

어떠했는가를 가히 짐작케 한다. 대사의 활동은 승속의 걸림이 없이 무애자재한 일면을 읽을 수 있다.
대소의 불사에 뛰어난 문장력으로 권선문을 지어주고, 대소불사에 증사, 주선(主禪)으로 모셨으며 봉은사의

대교 반포에 증사로 참석하고, 달마산의 무량전 창건에 주선으로 임석하는 등 어디고 잠시 응했을 뿐 곧장
일지암으로 돌아와 주석하였다 한다.
대사는 일지암에 주석하면서 다도(茶道)를 생활화하고 신라 때부터

려온 우리나라의 다도가 꺼져갈 때 동다(東茶)의 훌륭함을 예찬하는 '동다송(東茶頌)'을 짓고 다도의 학술적 이론을 기록한 <다신전(茶神傳)> 등을 지어 다성(茶聖), 다신(茶神)의 칭호까지 얻었다.

스님은 추사가 71세로 죽자 세상의 무상을 느꼈던지 73세 때 과천에 있는 영전에 조문하고 와서는 줄곧 일지암에

머물며 두문불출하다가 고종 3년 병인년(1866) 8월 2일(동사열전에는 을축년 7월 2일로 기록됨)에 입적하였다.

 

 

 

  대흥사 (연리근)

 

 

 

  대흥사 대웅보전

 

 

 

 

 

 

 

 

 

  대흥사를 빠져나가며

  대흥사 약수터

 

 

  대흥사 설향다원

 

 

 

  완도항에 도착

  그랜드 사우나모텔 602호에서 내려다본 완도시가지

  602호 룸메이트

 

 

  완도항 조형물

 

  나무트리

  완도항 분수대

 

 

 

  완도군 해조류센터에서

 

  완도항의 동백꽃

 

  완도항 천지횟집 천지물산을 찾았다,

 

 

 

  완도 천지횟집 전복 풀코스 요리 1人당 50,000원

 

 

 

 

 

 

  완도항

 

 

 

 

  완도군 해조류센터

 

 

 

  완도군 해조류센터

 

 

  해조류센터 전망대

 

 

 

 

  완도군 해조류센터 전망대에서

 

 

 

 

 

 

 

  저녁식사를 끝내고 숙소로 들어가기전 완도항에서  

 

  완도 그랜드 사우나모텔에서 1박을 합니다,

인생(人生)

                                   서산대사 해탈시

근심걱정 없는 사람 누군고 출세 하기 싫은 사람 누군고

시기 질투 없는 사람 누군고 흉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게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대를 가졌다 기죽지 말고

못배웠다 주눅 들지 마소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가진 것 많다 유세 떨지 말고 건강하다 큰소리 치지말고

명예 얻었다 목에 힘주지 마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더이다

 

잠시 잠간 다니러 온 세상 있고 없음을 편 가르지 말고

잘나고 못남을 평가 하지 말고 얼기 설기 어우려져 살아나 가세

 

다 바람같은 거라오 뭘 그렇게 고민하오 만남의 기쁨이건

이별의 슬픔이건 다 한순간이오

 

사랑이 아무리 깊어도 산 들 바람이고

외로움이 아무리 지독해도 눈보라일 뿐이오

 

폭풍이 아무리 세도 지난뒤엔 고요하듯

아무리 지극한 사연도 지난뒤엔 쓸쓸한 바람만

 

맵돈다오 다 바람이라오

버릴것은 버려야지 내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있으면 무엇하리오

 

줄게 있으면 줘야지 가지고 있으면 뭐하노 내것도 아닌데

삶도 내것이라고 하지마소 잠시 머물다 가는것일 뿐인데

묶어 둔다고 그냥 있겠오

 

흐르는 세월 붙잡는다고 아니 가겠소 그저 부질없는 욕심일뿐

삶에 억눌려 허리 한번 못피고 인생 계급장 이마에 붙이고

뭐그리 잘났다고 남의 것 탐 내시오

 

훤한 대낮이 있으면 까만 밤하늘도 있지 않소

낮과 밤이 바뀐다고 뭐 다른게 있소

 

살다보면 기쁨일도 슬픈일도 있다만은

잠시 대역 연기 하는 것일뿐 슬픔 표정 짓는다 하여

뭐 달라지는게 있소 기쁨표정 짓는다 하여 모든게 기쁨 것만은 아니요

 

내인생 네인생 뭐 별거랍니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고 불다보면

멈추기도 하지 않소 그렇게 사는 겁니다

 

삶이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오

죽음이란 한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다

구름은 본시 실체가 없는것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짐이라

浮雲自體本無實 (부운자체본무실) 

구름은 본래 실체가 없으니

生死去來亦如然 (생사거래역여연)

죽고 살고 오고 감이 모두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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